오늘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사실 드라마 이전에 책이 있었다. 2년전에 읽었는데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두번이나 읽었다. 만화 읽듯이 봤다. 당시에 받은 안은영의 느낌은 이랬다. 본인에게 짊어진 운명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람들을 구하는걸 보면 정의로운 사람인걸까? 면면히 들여다보면 자기 인생 사는 것도 벅차서 언제 보건교사 일을 그만두나 고민하는 직장인에 불과했지만 마주하는 사건마다 피하지 않고 기어이 당하고야 마는 안은영의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친근한 괴짜 선생님의 요상한 서사. 학창시절 생활 한복을 입고 다니는 선생님들이 떠오르며 기시감을 느꼈다.
내가 넘버원 온리원 한국형 히어로라고 이름 붙인데는 퇴마하는 내용임에도 학생을 구하고 귀신도 구한다는데 있다. 나아가 불특정 다수들을 구하며 불특정 다수들과 열심히 싸워댄다.
#1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으로 귀신을 때려잡기
#2 소설이 원작인 보건교사 안은영
#3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국형 히어로물
#1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으로 귀신을 때려잡는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국의 여느 퇴마 장르와는 다른 길을 걷는 퇴마사라 볼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으로 귀신들을 때려잡기 때문이다. 귀신의 모습은 여기서 젤리로 구현된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젤리가 있는 반면에 혼탁하고 바이러스 같은 흉측한 형태의 젤리들도 있다.
이 젤리들은 안은영을 일생동안 괴롭혀왔다. 그의 몸에 해를 가하기도 했다. 일상에 끊임없이 끼어들며 안은영을 쉬이 내버려두지 않았다. 안은영에게는 그에게만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조화로운 색으로 이뤄진 세상에서 형형색색의 젤리들은 안은영의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안은영은 늘 생각한다.
이런 젤리들, 좀 안보이면 안돼?
M고로 부임한 안은영의 일상은 역시나 평탄하지 않다. 장난감 칼을 지니고 다니며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젤리를 퇴치하러 다니는 일상. 주변 사람들도 안은영을 곱지않게 바라본다. 사실 뭐 안은영이 이상하다고 보긴 좀 힘들 것 같다. 드라마 속 모두가 괴랄하다.
또 눈여겨볼 부분은 안은영의 보조배터리인 홍인표다. 하루에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쓸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두 소진되면 더 이상 젤리를 퇴치할 수 없다. 안은영은 투명하고 맑은 기운을 감싸고 도는 홍인표의 에너지를 흡수하는데 이는 마치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됐을 때 보조배터리를 급히 찾는 우리 모습 같다.
#2 소설이 원작인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거기선 귀신을 때려잡는 설정이었다. 젤리까지 이어진 것은 이경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안은영을 K드라마에서 흔히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로 정형화 시키지 않은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안은영을 사랑스럽지만 멋있는 캐릭터로 연출한데서 박수쳐주고 싶었다. 오프닝만 보면 알거다. 이렇게 괴짜 같은 캐릭터가 이렇게 멋잇을 수 있다니. 오늘부터 내가 아는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될거다.
<비밀은 없다> <미스홍당무>의 연출을 맡은 이경미 감독이 이번 드라마를 연출했는데, 이경미 감독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상상 안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의 내용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고.
이경미 감독도 소설을 읽고 흥미롭던 차에 자신에게 드라마화 제안이 왔었고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정세랑 작가의 팬들이 이경미 감독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나 또한 정세랑 작가 특유의 쾌활함과 생기있음에 이경미 감독만의 쌩뚱맞고 괴랄한 연출이 합쳐지면 더없이 좋을 작품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경미 감독 작품에선 보통 더 보고 있다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동장을 한바퀴 뛰고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구간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보면 안다. 후회 없을 작품이다 정말.
#3 보건교사 안은영이 한국형 히어로물이다
약간의 스포가 들어간다. 사실 히어로물이라 하면 웬 영웅 같은 캐릭터가 어느순간 나타나 악당들을 때려잡고 멋있게 돌아서는, 또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다. 정형적인 히어로물이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좀 다르다. 나만 보이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젤리들을 때려 잡는다. 그러곤 정작 감사인사 한마디 못 받는다. 안은영과 비슷하게 젤리가 보이는 캐릭터들은 안은영보고 미련하다고 한다. 차라리 이걸로 돈을 벌 생각을 하라고. 안은영은 자신의 능력을 그렇게 사용할 수 없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인물이지만 그렇게 속물은 아니다. 이상하지만 착한 선생님.
거기엔 어떤 정의감이 있는건 아니다. 그냥 피할 수 없으니 당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는거다. 시대의 어른이라면, 선생이라면 아이를, 학생을 지켜내는 것이다. 안은영 자신은 너무나도 하기 싫지만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의무를 다하면서 한국형 히어로로 자리매김 한다. 나라를 지켜야하는 대륙너머 아메리칸 히어로와는 결이 다르다. 다소 수동적으로 보일지라도 언행에 불평이 그득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내 친구의, 동료의 모습이 떠올랐다 .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치부도 들쳐낸다. 뭐 신랄하게 비판한다거나 꼬집는 종류의 블랙 코미디 스러운 느낌은 결코 아니다. 학내 왕따 문제, 산재 문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 여러 모습들을 그려내지만 이경미 감독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잘 풀어냈다. 그러니까 <보건교사 안은영>은 가볍게 보기에는 한국사회와 결부시켜 볼 지점이 많고 무겁게 보기에는 드라마 내에서 영상언어가 꽤나 유쾌하고 발랄하게 기능하고 있다. 여성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이경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의미는 세상에 없는 ‘온리원’ 드라마가 나온다는 의미기도 하다.
- 나오자마자 6시간만에 한 시즌을 독파했다. 보는 내내 웃었다. 쌩뚱 맞아서 웃었고, 드라마 중간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미지를 보면서 웃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물론 좀 더 생각 해봐야 겠지만 만약 처음 보는 것이면 다들 가볍게 보고 넘기며 웃었으면 한다. 웃으며 보기만 해도 6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드라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들 역시 가득하다. 충분히 조명을 받는다면 시즌 2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달까. 흥해라 흥해라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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